[특파원 리포트]'달러 기축통화' 흔드나..구세주서 위협이 된 페트로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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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4년 7월 이른 아침 이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워싱턴DC 인근의 앤드루스 공군기지. 윌리엄 사이먼 당시 미국 재무장관은 “빈손으로는 돌아오지도 말라”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밀명을 받고 긴장된 표정으로 전용기에 탑승했다. 공식적으로는 유럽·중동 지역에 대한 의례적인 2주간의 경제 순방길이었다.

하지만 최근 블룸버그 탐사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를 4일간 방문해 압둘 아지즈 초대 국왕과 비밀협약을 맺는 것이 실제 임무였다. 사우디가 석유 판매로 벌어들인 페트로달러(오일달러)로 미 국채를 사주면 미국은 사우디 왕조에 군사장비를 파는 등 외교·정치적으로 후원하는 것이 협상의 기본 골자였다.

1973년 4차 중동전쟁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자 아랍 산유국들은 보복으로 오일쇼크를 일으켜 국제유가를 세 배로 상승시켰다. 그 여파로 미국 경제는 물가 급등, 증시 붕괴 등 추락을 거듭했다. 더구나 1971년 닉슨 행정부의 달러·금 태환 금지조치로 2차 대전 이후 미국 헤게모니의 주요 축인 국제통화 질서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 위기에 몰려 있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 수행을 위해 달러를 마구 찍어냈고 재정적자는 급증했다. 달러 가치를 불신한 다른 나라는 보유 중인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지만 미국은 감당할 수 없었다.

페트로달러는 이 같은 위기를 돌파할 유일한 구세주였다. 결국 사우디와의 협상 성공에 힘입어 미국은 경제난에서 다소 숨을 돌렸고 ‘신(新)브레턴우즈 체제’가 완성되면서 달러는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만 양국은 외교적 파장을 우려해 사우디의 미 국채 보유량을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하지만 최근 양국관계가 냉랭해지고 41년 만에 밀약관계가 깨질 조짐을 보이면서 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우디가 미 국채를 대량으로 팔아치울 경우 국제금융시장이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미 재정·통화정책이 크게 제약을 받고 달러화 지배 금융질서가 일부 허물어질 수 있다. 뇌관은 지난 5월17일 미국 상원이 사실상 사우디를 겨냥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이른바 ‘9·11테러법’인 ‘테러행위의 지원국들에 맞서는 정의(JASTA)’라는 이름의 법안이다. 발끈한 사우디는 7,500억달러에 달하는 미 국채와 미국 내 자산을 매각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물론 사우디가 미 국채를 투매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규모 매도에 국채 가격이 급락하면 사우디도 손실을 각오해야 하고 외교관계 악화가 불가피하다. 또 국채를 내던지더라도 시장 충격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지적이 대다수다. 최근 미 재무부가 공개한 바에 따르면 사우디의 미 국채 보유량은 올 3월 말 현재 1,168억달러이다. 전체 유통량인 19조달러의 1%도 되지 않아 시장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물량이다.

하지만 사우디가 실제 칼을 뽑아들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가뜩이나 중국 경기둔화, 미국의 금리 인상 등 리스크 요인이 깔려 있는 가운데 미 국채는 물론 유로화·엔화 채권까지 급락하는 등 일시적이나마 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사우디 외환보유액이 5,870억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미 국채 보유량은 미 재무부 발표의 두 배 이상으로 추정된다. 사우디가 중국처럼 미 국채를 다른 나라 계좌에 숨겨놓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주식, 파생상품, 민간 채권 등까지 포함한 달러화 보유자산 규모는 3,900억달러가량으로 추정된다.

나아가 양국 간 관계 악화, 저유가 등과 맞물려 사우디의 미 국채 투매 경고를 허세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최근 들어 미국과 사우디는 이란 핵협상,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 격퇴 등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을 빚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도 셰일가스 혁명에 힘입어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사우디의 전략적 가치는 과거보다 훨씬 줄었다. 반면 사우디로서는 미 국채를 팔아 달러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사우디는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 상장계획에서 드러나듯 25년 만에 최악인 막대한 재정적자를 메우는 것이 시급한 처지다.

특히 사우디가 미 국채를 대량매도할 경우 40여년 전과는 정반대로 장기적인 측면에서 ‘달러 리사이클링’ 구조에 금이 가는 ‘티핑포인트(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전환점)’가 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현재 미 달러화 지배질서는 ‘중국 등 신흥국과 산유국의 무역 흑자→미국의 해외로 달러 유통→다른 나라의 국채 등 미 자산 매입→달러의 미국 재유입’의 구조로 유지되고 있다. 우드로윌슨국제센터의 데이비드 오타웨이 중동 담당 고문은 “과거 사우디의 미 채권 매입은 페트로달러를 리사이클링하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정치적인 관점에서는 갈수록 부자연스러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사우디 등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공백이 커지면 위안화 국제화를 노리는 중국이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사우디가 달러 대신 위안화 표시 석유거래를 늘린다는 시나리오다. 또 영국·일본 등 미 우방국들도 오일달러를 자국에 재투자하기 위한 경쟁에 더 박차를 가할 것으로 블룸버그는 내다봤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aily.com

 

출처 : http://m.media.daum.net/m/media/world/newsview/20160710184102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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