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두운 과거' 폭로하는 노소영 소송의 역설

오마이뉴스 0 43 2019.12.10 20:45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지난 2018년 3월 광주에서 열린 2018 아시아문화포럼에서 노소영 아트센터나비미술관장이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1조 4천억 원' 재산분할 청구한 노소영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혼소송과 더불어 재산분할 문제가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2017년 7월 노소영 관장을 상대로 이혼조정을 신청했다. 하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소송으로 발전했고, 이혼에 소극적이었던 노소영이 지난 12월 4일 반소(反訴, 맞소송)를 제기하면서 재산분할을 청구하게 됐다. 반소로 인해 노소영은 기존에 갖고 있던 피고 지위에 더해 원고 지위도 추가로 갖게 됐다. 또 최태원이 청구한 이혼 문제와 더불어 노소영이 청구한 재산분할 문제가 동일한 재판부에 의해 함께 다뤄지게 됐다.

그런데 노소영이 청구한 규모가 거대하다. '규모'라는 표현을 써야 할 정도다. 남편의 불륜이 가정파탄에 미친 영향을 근거로 한 위자료 청구액은 3억원이지만, 남편의 재산 형성에 대한 자신과 친정의 기여도를 근거로 한 재산분할 청구액은 최태원의 SK 지분 중에서 42.3%나 된다. 시가로 1조 4천억 정도 되는 재산을 청구한 것이다.

노소영이 요구한 42.3%는 SK그룹을 지배하는 SK주식회사의 주식이다. SK주식회사는 시가 총액 18조 2937원으로 코스피 상장사 중에서 17위의 대기업이다. 이 기업에서 최태원의 지분은 12월 9일 현재 18.44%다. 이 지분의 절반 가까이를 노소영이 요구한 것이다. 이번 재산분할 청구는 SK주식회사는 물론이고 SK그룹 전체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줄 만한 사안이다.

언론 보도를 정리하면, 노소영 측은 최태원과의 결혼 후에 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SK그룹의 재산 증식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최태원 측은 결혼 이전에 선대 회장이 재산을 축적해놓았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양측의 소송 전략은 한국 재벌 역사의 흑막을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각각 내세우게 될 주된 논리들은 한국 재벌의 어두운 면들과 그대로 직결된다.

노소영의 논리, 최태원의 논리

최태원은 최종현(1929~1998년) 전 회장의 아들이다. 최종현은 SK그룹의 2대 회장이다. 초대 회장은 최종현의 형인 최종건(1926~1973)이다. 최종건에서 최종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SK그룹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2001년 <경영사학> 제16집 제1호에 실린 한한수 경희대 교수의 논문 'SK그룹의 성장과 발전'의 한 대목이다.

"최종건 회장의 섬유산업과 최종현 회장의 석유화학과 정보통신을 축으로 하여 SK그룹의 기초를 닦고 성장을 주도했다."

최종건 때인 1953년 선경직물공장을 인수하고 최종현 때인 1973년에 선경유화주식회사 및 선경석유주식회사를 설립한 데 이어 1992년에 이동통신사업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에 뛰어든 것이 SK그룹의 기반을 닦고 성장을 주도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위 주력 업종들 중에서 이동통신은 이 그룹을 국제적인 기업집단으로 격상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경희대 교수인 김성수와 김신이 2012년 <경영사학> 제27집 제1호에 기고한 'SK 창업과 성장 과정의 경영사적 연구'라는 논문은 "1990년대에는 정보통신기업으로 도약함으로써 한국을 세계적인 정보통신 강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설명했다. SK가 한국을 정보통신 강국으로 만들었다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동통신사업은 이 그룹의 격을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기여했다.

바로 이 부분이, 노소영이 42.3%를 청구하게 된 핵심적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SK가 이동통신사업으로 큰돈을 번 것과 자신이 이 가문에 시집간 것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SK를 이동통신사업에 진출시킨 장본인은 최종현이다. 최종현이 현직 대통령인 노태우의 딸을 며느리로 들인 것은 서울 올림픽이 있었던 1988년이다. 그해 9월 13일, 노소영과 최태원이 청와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최종현이 이동통신사업을 구상한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하지만, 준비 작업을 본격화한 것은 이 결혼식 이후였다. 위의 한한수 논문은 이렇게 설명한다.

"선경의 정보통신산업 진출은 최종현 회장이 80년대 초부터 구상해온 그룹 차원의 경영전략의 일환이었다. 최 회장은 1989년 10월 미국 뉴저지주에 현지법인 유크로닉스를 설립했으며 1990년 5월에는 선경정보시스템(주)을, 동년 10월에는 (주) YC&C, 1991년 4월에는 선경텔레콤(주)을 설립하는 등 정보통신사업 진출 기반을 구축했다."

노태우의 임기는 1988년 시작해서 1993년에 끝났다. 이 기간 내에 SK는 정부가 선정하는 이동전화 사업자로 뽑혔다. SK가 내세운 대한텔레콤은 평가점수 10000점 만점에 8388점을 받아 포항제철의 신세기이동통신(7496점), 코오롱의 제2이동통신(7099점)을 제치고 1등으로 선정됐다.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 2018년 1월 16일 서울가정법원에서 열린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소송 2회 조정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노태우의 힘으로 선정된 이동통신 사업자?

정권과 재벌의 정경유착이 지금보다 훨씬 심했던 시절이다. 최종현 회장이 청와대 사돈의 힘으로 선정된 게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가 많았다. 1992년 8월 20일자 <동아일보>는 '사돈 회사에 이동통신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2이동통신의 사업자 선정이 연기론이 무성한 끝에 마침내 선경그룹이 대주주로 참여하는 대한텔레콤으로 결정됐다. 이미 충분히 예견되었던 일이다. 이동통신의 사업자 선정이 시작됐을 때부터 업계는 선경이 이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문제는 선경이 이를 차지하는 데 필요한 자금 동원, 영업력, 기술 축적 면에서 다른 회사를 압도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을 수 없다. 일반의 확신은 그런 데 있지 않았다. 선경이 현직 대통령과 사돈 관계에 있다는 것이 그 확신의 뿌리였다."

당시의 SK가 자금·영업·기술 면에서 압도적이었다면, 노태우의 사돈이라 해도 뒷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기에 정경유착 의혹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노소영의 소송 전략은 아버지가 SK의 자산 증식에 기여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입증을 잘해내게 되면, 노태우 정권과 SK의 정경유착이 확실히 입증된다. 정권과 재벌들의 유착 관계가 이를 통해 보다 더 선명하게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여타 재벌들은 남 일이라고 팔짱 끼고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소송을 통해 재벌의 어두운 면이 좀더 명확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노소영이 입증을 잘하면, 재벌의 어두운 면이 확실히 드러난다. 최태원이 입증을 잘해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될 수 있다. 최태원의 소송전략은 선대 회장 때부터 재산이 축적됐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전략으로 그가 입증을 잘하게 되면, 한국 재벌의 자본축적 과정이 어느 정도 드러날 수 있다.

적산 불하와 독재정권 특혜로 성장한 SK그룹

최종건이 1953년에 인수한 선경직물은 선만(鮮滿)주단과 경도(京都)직물의 합작으로 1939년 설립된 회사다. '선만'과 '경도'의 앞 글자를 따서 '선경'이라 불렸던 것이다. 여기서 SK라는 지금의 이름이 나오게 됐다.

그런데 선만주단과 경도직물을 만든 사람들은 '선만'이니 '경도'니 하고 발음하지 않았다. 그들은 '센만', '교토'라고 발음했다. 일본인들이 세운 회사였던 것이다. '선만'의 '선'은 식민지 조선을 가리키고, '경도'의 '경'은 교토를 가리켰다. 그러니까 SK의 S는 식민지 조선, K는 교토를 가리켰던 것이다.

일제 패망과 함께 선경직물은 미군정의 관할을 거쳐 이승만 정권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적국 일본인의 재산이라 하여 적산기업으로 분류됐던 것이다. 국민기업이나 공공기업이 됐어야 할 이런 적산기업들이 미군정 및 이승만 정권과 친한 기업들에게 헐값으로 불하되고, 이것이 한국 재벌의 자본축적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사실상 공짜나 다름없는 값으로 적산기업을 불하하면서도 외형상으로는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웠다. 적산기업과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한국인에게 소유권을 넘긴다는 것이었다.

최종건은 선경직물의 일반 사원이었다. 해방 1년 전인 1944년, 견습기사로 입사했다. 해방 뒤에 선경직물 관리인이 된 사람은 황청하와 김덕유였다. 이들은 주주라는 이유로 관리인이 됐다.

그런데 이들은 대주주가 아니었다. 총 50만 주 가운데 각각 100주씩을 보유한 소액주주들에 불과했다. '개미'인 그들이 관리인이 됐던 것이다.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가야 할 적산기업이 이렇게 '개미'들에게 돌아가는 일이 이 당시에는 비일비재했다.

황청하와 김덕유는 직물 사업에 관심이 없었다. 이 분야에는 문외한이었다. 그래서 최종건을 생산부장으로 임명하고 경영을 사실상 위임했다. 그 뒤 최종건은 섬유 장사를 한다면서 사표를 제출하고 나갔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황청하·김덕유가 더는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자, 최종건이 정부로부터 선경직물을 인수하게 됐다.

돈을 내고 불하받기는 했지만, 적산기업 인수는 그 자체로 행운이었다. 최종건한테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더해 이승만 정권의 특혜 지원까지 있었다. 이에 힘입어 최종건은 선경직물을 크게 키울 수 있었다.

이처럼 SK의 성장 과정에서는 적산기업 불하와 이승만 정권의 특혜 지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혼소송에서 SK의 재산축적 과정이 낱낱이 파헤쳐지다 보면, 이런 부분까지 거론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최태원 측은 적산기업 불하나 이승만 정권의 특혜 같은 것은 가급적 언급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송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그런 부분들이 거론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노소영 관장과 최태원 회장의 이혼소송은 한국 재벌의 부도덕한 자본 축적과 관련돼 있다. 그들이 서로 차지하고자 하는 재산은 엄밀히 말하면 국민의 몫이 됐어야 할 것들이다. 일제강점기 하에서 우리 민족이 강탈당한 재산과 더불어, 역대 정권의 특혜 지원 속에 허비된 국민의 혈세가 그 속에 녹아 들어 있다. 정확히 말하면 국민의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놓고 두 부부가 재산분할 소송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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