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무당들 벌벌 기던 큰무당 원자경, 2년 뒤엔 '십자군' 총재


신흥종교·이단 전문가 탁명환씨 생전에 쓴 최태민 숨겨진 이야기
신흥종교·이단문제 전문가인 탁명환(1937~94) 소장이 최태민(1912~94)을 처음 만난 것은 1973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의 이름은 ‘최태민’이 아니라 ‘원자경’이었다. 계룡산 주변에 산재한 신흥종교 문제를 파고들던 탁 소장은 대전일보에 실린 광고를 보고 대전 보문산 골짜기에 있던 감나무집(대전시 대사동 196)을 직접 찾아갔다. 탁 소장은 거기서 원자경을 만났다. “거기에서 머리가 시원스럽게 벗겨진 문제의 칙사님인 원자경씨를 최초로 만났다”고 탁 소장은 본지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기록해 두었다. 88년 탁 소장이 ‘최태민과 구국선교단·구국십자군’을 해부한 기록이다. 탁 소장이 만난 최태민, 그의 숨겨진 이야기를 2회에 걸쳐 싣는다.
1975년 5월 22일 구국십자군 창군을 앞둔 멸공단합대회에서 최태민이 대표로 선서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1975년 5월 22일 구국십자군 창군을 앞둔 멸공단합대회에서 최태민이 대표로 선서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탁 소장은 “원자경이 살던 감나무집의 벽에는 둥근 원이 색색으로 그려져 있었다”고 했다. 원자경은 “그걸 응시하며 ‘나무자비 조화불’이란 주문을 계속 외우면 만병통치는 물론이고 도통의 경지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당시 광고를 보고 찾아온 이들은 수십 명이었다. 신흥종교의 교주들도 있고, 무속 잡인들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모여서 원자경이 설한 ‘영세계 원리’를 청강했다고 한다.
원자경(최태민)은 자신을 ‘영세계에서 온 칙사’라고 소개했다. 1973년 대전일보에 원자경이 냈던 광고.원자경(최태민)은 자신을 ‘영세계에서 온 칙사’라고 소개했다. 1973년 대전일보에 원자경이 냈던 광고.
이후 원자경은 거처를 대전시 선화1동사무소 앞으로 옮겼다. ‘영세계 칙사관’이란 간판도 내걸었다. 원자경은 자신이 영의 세계에서 온 칙사(메신저)라고 주장했다. 이때만 해도 그에게는 ‘목사’라는 직함이 없었다. 오히려 ‘무속인’에 더 가까웠다. 그는 대전일보(1973년 5월 13일자 4면)에 ‘영세계에서 알리는 말씀’이란 광고를 싣고 예식장을 빌려 ‘영세계 원리’를 전하며 사람을 모았다. 광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세계 주인이신 조물주께서 보내신 칙사님이 이 고장에 오시어 수천년간 이루지 못하며 바라고 바라든 불교에서의 깨침과 기독교에서의 성령강림, 천도교에서의 인내천. 이 모두를 조물주께서 주신 조화로서 즉각 실천시킨다 하오니 모두 참석하시와 칙사님의 조화를 직접 보시라 합니다.’

탁 소장은 대전 시내로 옮긴 원자경의 거처도 수차례 찾아갔다. 원자경은 거기서도 벽에다 둥근 원을 그려 놓고 사람들에게 ‘나무자비 조화불’을 외우면서 응시하게 했다. 여기서 탁 소장은 원자경이 무당을 상대하는 광경을 보고 ‘한 가지 특이한 일’이라며 이렇게 기록했다. ‘잡신을 섬기는 무당이 원 교주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고 벌벌 긴다는 사실이다. 처음 만난 무당도 그에게 절을 하고, 그의 치료를 받으면 신기(神氣)가 떨어져 무당업을 폐업하고야 만다는 사실이다.’ 탁 소장은 “그에게 소위 ‘영력(靈力)’이 어느 정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그게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의 역사와는 다르다고 했다. 일종의 대(大)무당인 셈이다. 74년에는 원자경에게서 전화가 왔다. 탁 소장과 원자경은 이화여대 앞 제과점에서 만났다. 이날 원자경은 “한민족에게 특별한 사명이 있다. 나는 영세계 칙사관의 대사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 뒤로도 몇 차례 더 만난 뒤 두 사람은 서로 연락이 끊겼다.

정국은 유신체제로 접어들었다. 75년 교계 신문에는 일제히 ‘대한구국십자군’ 기사가 실렸다. 총재의 이름은 ‘최태민(崔太敏)’이었다. 탁 소장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얼굴은 낯이 익었다. 다만 검은 안경을 쓰고 있는 게 예전과 달랐다. 최태민은 다름 아닌 원자경이었다. 탁 소장은 그 길로 서울역 뒤편의 빌딩에 있던 대한구국십자군 본부를 찾아갔다. 전화를 하자 최태민은 당황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통화를 한 뒤에 두 사람은 신세계백화점 옆 D다방에서 만났다. 탁 소장은 “대전에서 보던, 이대 앞에서 만났던 초라한 원자경 교주가 아니었다. 위풍당당하고, 야무진 모습으로 뭔가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최태민은 “지금은 박 대통령의 영애 근혜양과 함께 일한다. 청와대를 무단출입한다”고 말했다. 또 자신이 타고 온 지프차도 근혜양의 것이라고 했다.
1975년 9월 5일 청와대에서 최태민(오른쪽 셋째)을 비롯한 구국선교단 일행이 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 큰 영애를 만나고 있다. 당시 최태민은 탁명환 소장에게 “청와대를 무단출입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1975년 9월 5일 청와대에서 최태민(오른쪽 셋째)을 비롯한 구국선교단 일행이 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 큰 영애를 만나고 있다. 당시 최태민은 탁명환 소장에게 “청와대를 무단출입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탁 소장은 원자경의 놀라운 변신에 할 말을 잃었다. 이후 탁 소장은 “최태민의 전신은 원자경”이라는 걸 몇몇 사람에게 말했다. 그러자 금세 엄청난 반응이 왔다. 중앙정보부 종교담당 책임자였던 이모 과장이 어떻게 알았는지 “몸조심하라”며 경고성 협박을 해 왔다. 이뿐만 아니었다. 최태민은 탁 소장이 지방 출장을 갔을 때 직접 연구소로 찾아와 편지를 써 놓고 갔다. 탁 소장은 그 편지의 내용도 기록해 두었다. 요점은 이렇다. (맞춤법은 편지 원문 그대로 표기)

‘탁소장! 生(최태민 자신을 가리킴)은 탁소장 아시다싶히 무슨 교단과 교리를 갖고 선교단을 이끌고 감이 아니고 순수히 반공단체 이온데 근래 탁소장이 구국선교단과 生에 대하여 모함을 한다는 말을 목사들한테서 전해 듣고 심히 불쾌했읍니다 … 이곳에 심방했다가 부재중이기에 돌아갑니다. 일차 상면을 원합니다. …’

최태민은 ‘목사’ 직함을 쓰고 있었다. 10만원을 내면 목사 안수를 받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신학 교육을 받지 않은 최태민은 헌금을 내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한다. 탁 소장은 “측근으로부터 (최태민이) 예장 종합총회 조현종씨로부터 안수를 받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후 최태민과 알력 때문에 제주도에서 (목사 안수를 준) 조씨가 경찰에 구속됐다. 최태민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확인할 길이 없었다. 당시 최태민의 세도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막강한 것이었다”고 했다.

당시 최태민이 꾸린 조직은 ‘십자군’을 표방했다. 명칭도 ‘구국(求國)십자군’이었다. 구국십자군은 모두 카키색 군복을 입고 어깨에 십자가 모양의 별을 달고 다녔다. 언뜻 보면 군 장성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탁 소장은 이에 얽힌 일화도 하나 소개했다.

천안에 있는 모 목사가 구국십자군 군복에 십자가 별을 달고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 당시 제3한강교를 지나기 전에 지방에서 올라온 차량은 헌병의 검문을 받아야 했다. 헌병은 버스에 올라 검문을 하다가 중장 계급장을 어깨에 단 사람을 발견했다. 앞에 가서 거수경례를 하고 물었다. “장군님, 실례합니다. 검문을 하겠습니다.” 3성 장군이 설마 고속버스로 이동할까 싶어 수상하게 여겼던 터였다. 그러자 그 목사는 화를 벌컥 내며 “새까만 졸병 새끼가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검문을 하겠다는 거야?”라며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래도 헌병은 굽히지 않고 목사를 차에서 하차시키고 검문을 했다. 조사 결과 구국십자군 지역사령관으로 밝혀졌다. 탁 소장은 “그 사건 이후 구국십자군이 어깨에 달던 십자가별이 없어졌다”고 밝혔다.최태민이 목사 두 명을 대동하고 탁 소장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최태민의 과거는 당신들보다 내가 더 잘 안다”고 말한 탁 소장은 몇 가지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첫째 목사직을 사퇴하고 평신도로 돌아갈 것, 둘째 칙사론 교리의 주장 중지, 셋째 평신도로서 교회에 출석할 것 등이었다. 동행한 목사 중 한 사람이 “탁 소장! 말조심하시오. 지금 이분이 어떤 분이시라고? 함부로 말이면 다하는 거요. 그런 식으로 하면 탁 소장 신상에 좋지 않아요”라며 협박을 했다. 탁 소장은 “진짜 목사가 가짜 목사를 비호하고 두둔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고 했다. 당시 ‘가짜 목사’ 최태민 주위에는 유신 치하에서 권력에 편승하려는 ‘진짜 목사’들도 적잖이 있었다.

■◆탁명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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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생. 개신교계 신문사 기자로 일하다 신흥종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연구소를 세우고 신흥종교와 이단문제 전문가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단·사이비 종교에 대한 고발과 폭로로 테러와 암살 위협, 협박이 끊이지 않았다. 85년에는 차량 폭탄 테러를 당했으며, 94년에는 대성교회 광신도의 테러로 숨을 거두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차남 탁지원 소장이 ‘월간 현대종교’를 맡고 있다.」

정리=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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