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게 녹는 안데스 빙하..그건 '재앙의 전주곡'

헤럴드경제 0 19 11.14 20:45

생명수’ 안데스 빙하
지난 40년간 47% 사라져

“5000m 이하 빙하
10년 뒤 완전 소멸” 경고

홍수·산사태 등 재해
언제 터질지 공포

[리마(페루)=고승희 기자] 남미는 겨울로 접어든 7월 중순, 리마 호르헤 차베스 국제공항(Jorge Chavez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하자 이슬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만난 한인 박명국(55) 씨는 “이런 비라도 오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라고 말했다. 그는 1999년 페루로 건너왔다. “리마는 1년 내내 비가 거의 오지 않는다”고 한다. 비가 내린다 해도 ‘이슬비’ 정도다.

이 곳은 사막 위에 지어진 도시다. 998만 명이 살고 있는 리마는 만성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리마에 식수를 공급하는 곳은 ‘열대 빙하’(Tropical glaciers) 지역이다. 적도의 산맥을 따라 위치한 열대 빙하는 남미, 아프리카, 인도네시아의 주요 수원 역할을 하고 있다. 야간 버스를 타고 가파른 산맥을 가로질러 장장 8시간을 달리면 마추픽추와 함께 페루 여행의 백미로 꼽히는 와라스(Huaras) 지역이 모습을 드러낸다. 해발 5250m의 설산(雪山) 파스토루리(Nevado Pastoruri)는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트래킹 코스로 유명하다. 


안데스 빙하는 리마를 비롯한 페루 사람들의 수자원이다. 먹고 마시고 농사짓는 모든 일을 안데스 빙하에 의존한다. 곤잘로 데하다 로페즈(Gonzalo Tejada Lopez) 유엔 식량농업기구(UN FAO) 페루 본부 지역 기술 조정관(Coordinador Tecnico Regional)은 “페루에서 나타나고 있는 기후변화 중 가장 큰 문제는 해마다 빙하가 녹고 있다는 점”이라며 “페루에선 모든 일을 물을 통해서 하기 때문에 빙하의 면적이 줄어드는 것은 심각한 타격이다”라고 말했다.

페루 국립빙하생태계연구소에선 “페루의 빙하는 생명의 원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재앙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시나리오는 나왔다. 기후변화가 한 편의 재난영화라면 ‘물’은 원톱 주인공이다. 그 중심엔 ‘빙하’가 있다. 


빙하가 사라진다…얼마나?

벤자민 키한드리아(Benjamin Quijandria) 페루 농업부 차관은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기후변화보고서(2014)를 인용, “지구의 기온은 1980년부터 지금까지 0.8℃가 상승했고 금세기 말까지 약 4℃가 상승할 것”이라며 “수십년 이내에 남미 안데스 산맥의 빙하는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냈다.

빙하가 녹는 주된 요인은 ‘기후변화’에 있다는 데에 큰 이견이 없다. 자동차 매연, 공장 연기, 블랙카본, 메탄 등 온실가스 배출량의 증가로 인한 지구 온난화는 해빙의 규모를 늘렸고, 속도를 앞당겼다.

페루 농업부와 빙하수자원연구단에 따르면 현재 페루엔 약 1215㎢에 걸쳐 2325개의 빙하가 존재하고 있다. 1970년 당시 페루엔 이보다 700여개가 많은 3044개의 빙하가 2042㎢에 이르는 지역을 덮고 있었다. 일본 교토(827㎢) 면적만큼의 빙하가 사라진 셈이다.

해빙 속도 역시 가파르다. 페루 수자원국(National Water Authority)에 따르면 페루의 빙하는 해마다 평균 17m씩 후퇴하고 있다. 마르코 싸파타 루요(Marco Zapata Luyo) 빙하수자원연구단 디렉터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열대 산악 지대인 코르디예라 블랑카(Cordillera Blanca) 빙하 앞면의 시료를 채취해 후퇴(Deglaciation)율을 측정했다”며 “1948년과 1967년 사이에 연간 7~9m 후퇴했고, 1968년과 2016년 사이에는 연간 20m가 후퇴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코르디예라 블랑카는 페루 안데스의 주요 빙하 지역이다. 

그 결과 2010년까지 코르디예라 산맥에서 19개의 빙산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마르코 싸파타 디렉터는 “현재 남부 지역의 4개 산맥도 소멸 추세다. 이 곳의 빙하는 5㎦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1㎢ 이하 소규모 빙하들의 후퇴 속도는 더 빠르다. 소규모 빙하는 전체 빙하의 87%(페루 빙하인벤토리 집계ㆍ2014)를 차지한다. 벤자민 키한드리아 차관은 “소규모 빙하는 기후변화에 취약하다”며 “지구온난화에 대한 적응력과 저항력이 낮아 가까운 미래에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1970년 존재한 빙하와 비교했을 때 “지난 46년 간 완쏘 (Huanzo), 칠라(Chila), 라 비우다(La Viuda), 촌타(Chonta) 등의 빙하가 큰 영향을 받아 90% 이상이 소실”(벤자민 키한드리아 차관)됐다. 그는 “빙하의 후퇴 속도는 위협적인 수준이며 10년 내 5000m 이하의 빙하들은 완전히 소멸할 것으로 예측된다”며 걱정했다. 

곤잘로 데하다 UN FAO 페루 본부 지역 기술 조정관은 “페루에서 나타나고 있는 기후변화 중 가장 큰 문제는 해마다 빙하가 녹고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왼쪽). 팔카코차 석호의 오른쪽을 지탱하고 있는 눈 덮인 팔카라주 산의 1850년대 모습.

빙하가 녹으면 재앙이 시작된다

눈앞의 위험 요인으로 닥친 것은 해빙으로 인한 재앙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남미 내륙 지역의 빙하가 91∼100% 손실되면 중앙아시아의 빙하도 3분의 2 정도가 사라진다. 빙하가 녹아내리면, 지구는 홍수 산사태 등의 재해와 마주하게 된다.

트래킹 명소로 자리 잡은 ‘와라스’는 페루 사람들에겐 ‘비극의 땅’으로 불린다.

페루 농업부에 따르면 와라스로부터 약 20km 떨어진 코르디예라 블랑카엔 빙하가 만든 석호(潟湖)인 팔카코차(Laguna Palcacocha)가 자리하고 있다. 1941년 팔카코차에 발생한 눈사태는 천연댐을 무너뜨렸다. 댐의 붕괴로 홍수가 도시를 덮쳤다. 와라스 지역의 3분의 1은 초토화됐고, 2800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빙하로 인한 역사상 최악의 재난이었다. 1970년엔 규모 7.5의 대지진이 강타하며 두 번째 재앙을 맞았다. 당시 와라스와 함께 융가이 지역에서 집계된 사망자 숫자는 무려 8000명이었다.

더 큰 불행은 ‘재앙’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마르코 싸파타 디렉터는 “1973년부터 2016년 사이 팔카코차 호수의 수량은 약 34배나 증가했다”고 말했다. 1974년 51만4000㎥였던 호수의 수량은 2016년 기준 1740만3353㎥로 불었다. 면적도 늘었다. 1974년 6만6800㎡였던 호수는 2016년 51만4000㎡가 됐다. 빙하 호수는 빙퇴석이 물을 막고 있는 형태이나, 이는 지진에 취약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게다가 얼음이 빙퇴석 역할을 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현재의 해빙속도라면 12만 명이 살고 있는 와라스에 다시 한 번 “대홍수의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벤자민 키한드리아 차관은 “팔카코차 석호는 눈 덮인 팔카라주(Palcaraju) 산과 푸카란라(Pucaranra) 산의 얼음벽을 양쪽으로 매달고 있다. 현재의 시나리오상 기온 상승은 석호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빙하덩이와 기반암 사이의 응집력이 약해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재 진행 중인 안전 공사로는 얼음과 암석 추락으로 발생하는 파도를 억제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고 진단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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