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맛과 멋] Adieu 아듀! 2017

미국중앙일보 0 1,443 2017.12.30 17:25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2017년 만큼 생의 큰 분기점을 만든 해는 드물다. 가장 충격적인 큰 변화라면 1981년의 미국 이민이지만, 29년 만에 이사를 한 것도 그에 못지 않은 큰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무척 활달한 줄 알지만, 사실은 낯가림이 심하다. 그래서 물건을 사러 가도 한 가게만 집중적으로 다닌다. 미장원은 물론이고, 고기집이면 고기집, 식당이면 식당, 옷집, 신발집 등 늘 다니던 집만 간다. 그렇다고 주인하고 통성명 하는 적도 없다. 혹시 상대방이 나를 아는 척 해주면 그때부터 말문을 열뿐, 먼저 더불더불 말을 건넬 만큼 비위가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움직이기 싫어서 한 집에서만 30년 가까이 산 것 같다.

언젠가는 한 지인이 집을 담보 삼아 융자를 받아서 비지니스도 하고, 집도 한 채 더 사면 재산이 몇 배로 불어난다고 꽤나 달콤한 조언을 한 적이 있다. 듣고 보면 꽤 그럴싸하다. 만약 현재 내 집이 5만원이면, 3만원 융자 받아서 2만원은 비즈니스 차리고 1만원으론 집도 한 채 더 사면 금방 20만원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럴 때마다 모기지를 더 얻어야 하지만 외형적인 자산은 5만원에서 20만원으로 4배가 된다니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겁이 많은 나는 듣고만 있었다. 상대방은 아무리 설득해도 내가 움직이지 않자 '바보'라며 답답해 했지만, 나처럼 주변머리 없는 사람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이란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사 후, 짐들을 풀면서 또 푼 짐들을 정리하면서 버리고 버려도 버려야 할 무엇들은 끊임없었다. 마치 우리 인생 같다. 사는 동안 우리에게 쌓이는 무수한 삶의 각질들. 때로는 치열한 욕망이, 때로는 분노가, 때로는 질투가, 때로는 회한이, 때로는 외로움이, 때로는 두려움이, 때로는 게으름이, 때로는 희망이, 때로는 절망이, 때로는 슬픔이, 때로는 교만이, 때로는 이기적인 그런 모든 것들이 마치 살림이 쌓이듯 쌓여서 얼굴에서 순수를 잃게 한다.

버리는 일은 참 어려웠다. 이것은 잊을 수 없는 추억 때문에, 이것은 내가 좋아하는 물건이라서, 이것은 내가 워낙 입고 폼 잡던 옷이라, 이 구두는 파리 번화가에서 샀지, 이 골동품은 존경하는 P선생께서 사주신 거, 이 도자기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 이 은제 소금 그릇은 프랑스 골동품 시장서 골랐어. 무엇 하나 추억에 걸리지 않는 게 없을 정도로 사연이 구구절절한 터라 정에 약한 나는 그 인연을 끊지 못해 안절부절 한 것이다.

하지만 버리면서 깨달았다. 인생이란 계속 버리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내려놓는 삶, 버리는 삶, 나누는 삶. 이 모두는 자기를 버리고 자유로워져야만 마음껏 실천할 기회를 맞을 수 있다. 그러므로 작은 집으로 줄여 이사를 했는데, 이 변화가 내게는 마치 새로운 삶을 위한 기회의 땅에 도달한 것 같은 유쾌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사실 이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만 해도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슴만 두근거렸다. 막상 하고 나니 훨씬 심신이 정리가 되면서 키가 한 뼘 가량 자란 것 같은 성취감마저 느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소소한 물건들이 작은 집에선 찬란한 주인공이 되는 모습 또한 여간 상쾌한 착시가 아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세계 정치는 바람 잘 날 없는 소용돌이 난장판이지만 나의 캘린더는 2017년을 넘기며 새로운 꿈에 부푼다. 일년 동안 알게 모르게 내가 지은 모든 허물들은 신께서 알아서 해결하실 것. 물론 2017년이라고 편안치는 않았지만, 늘 스트레스였던 고백성사를 강제 당했던 과거 연말들의 회억도 만만치 않지만, 하여 더 즐겁게 보내주고 싶다. 아듀 Adieu!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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